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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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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9 20:47:39, 조회 : 686, 추천 : 49 |
섬마을 우체부
구준회
벚꽃이 하얗게 피어 작은 섬이 마치 바다 위에 던져진 흰 꽃다발처럼 보였다. 벚꽃은 수수하지만 맑은 흰색이어서 햇살을 받아 투명해지니, 작고 흰 조개껍질이 나무에 피어난 듯 했다. 하얗게 밀려드는 파도와 벚꽃은 오랜 세월 서로를 닮아 온 듯 하얗게 부서지고 흩날려 파도 위에서 한 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벚꽃 아래로 은빛 자전거 바퀴가 굴러 왔다. 모자를 쓴 우체부 아저씨가 끌고 오는 자전거였다. 바퀴는 은빛이지만 대는 빨간 색이어서 빨간 자전거만 느리게 구르는 듯 보였다. 그것은 마치 도화지에 하얀 꽃잎을 흩뿌려놓고 빨간 점선을 그어 놓은 듯 멀리서도 금세 눈에 띄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이 섬에서 유일하게 외부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였다. 총각이던 아저씨는 이젠 거의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다 바람과 햇볕에 주름이 깊어져 갔다. 그래도 언제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소식을 전해주는 인자한 분이였다. 어느 집에 육지 사는 아들, 손자 근황과 그 집의 형편을 훤히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편지를 직접 읽어 주어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조금 외딴 바닷가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온 편지를 전해주러 가는 길이다. 그 집에 가려면 벚꽃나무가 길게 늘어선 바닷가 둑방길을 한참 가야했다. 할머니에겐 신동이라고 소문이 났던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육지에 나가 공부해 엄청 큰 회사에 다닌다고 했었다. 일년에 서너 차례씩 올 때면 할머니 댁은 잔치를 하는 듯 했고 주변 몇몇 이웃집에 선물을 돌리곤 해 할머니 집을 부러워들 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지난 몇 년간은 도통 한번도 찾아오는 걸 본 사람이 없었다. 삼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사시며 말없이 많이 늙어지셨다. 할머니는 바닷가에 앉아 육지 쪽을 한없이 바라 보다 들어가시곤 했는데 우체부 아저씨도 그 모습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었다.
한두 번 온 편지에서 아들이 아이엠에프를 맞아 회사가 부도나고 친구의 빚보증으로 거리에 나 앉았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피신중이라 가족과도 헤어져 있다는 소식이었다. 할머니는 아이엠에프가 무언지 모른다. 다만 육지에 사는 엄청 힘센 산적 같은 귀신이 우리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가서 그 귀신을 쫓아 달라고 천지신명께 기원하기만 했다. 그러면 바다는 철썩철썩 파도로 할머니 마음을 쓰다듬어 주곤 했다.
우체부 아저씨는 할머니를 쪽마루에 앉게 하고 옆에 걸터앉아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 어머니 며느리예요.
아범이 삼일 전...... 세상을 떠났어요......
경찰들이 노숙자 재활치료소에 있던 아범이......그동안 쌓인 병이 깊어 숨졌데요...... 자존심이 강해 연락도 없더니 그예 변고를 당하고 말았네요......오늘 화장장에서 화장해 강물에......뿌리고 어머니께 글월 올립니다......“
편지를 읽던 우체부 아저씨는 읽던 걸 멈추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훔치고 있었다.
백화 백화 만발한데
칠성판이 떠나가네
백파 만파 만발한데
이네 아들 떠나가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은 바다만 보다가, 파도치는 걸 보다가 마저 읽어 내려갔다.
“ 어머니, 유일한 손자가 이번에 학교에 갔는데, 반에서 1등을 해서 상을 탔어요. 아빠를 닮아서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빼다 박은 아범이예요. 손녀딸은 다섯 살인데 얼마나 예쁜 짓을 많이 하는지 몰라요 ...... 잘 키울께요......며칠 후에 함께 어머니 뵈러 갈게요......”
백화 백화 만발한데
이네 아들 돌아오네
백파 만파 만발한데
우리 손주 찾아 오네
우체부 아저씨는 말없이 할머니 손을 오래 붙잡고 있다가 떠난다. 한 바퀴 한 걸음, 두 바퀴 두 걸음 빠알간 자전거가 흩날리는 벚꽃잎 속으로 멀어 간다. 벚꽃 하얀 꽃잎이 눈물처럼 한없이 떨어져 둑방길에 날리며 덮혀 빠알간 자전거가 마치 하얀 세상 속으로 스며 흡수되는 듯 보였다. 할머니의 그렁한 눈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하얀 둑방길과 하얀 파도가 엉켜 백색의 커다란 물결로 변해 먼 바다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로 날던 벚꽃잎 하나가 머리 위를 맴돌다 손바닥에 떨어 질 때 할머니는 우두커니 꽃잎을 바라보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또 한 통의 꽃 편지였다.
<불사조의 아침. (도)나무와 숲.2009>
<문학서울 서울교원문학회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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