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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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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9 23:55:05, 조회 : 793, 추천 : 46 |
작은 섬 아기별
구 준회
갓 태어난 파도가 망망한 바다로부터 동글게 몸을 말았다가 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의 가장자리로 작은 물보라 거품이 인다. 멀리서 보면 하얀 띠처럼 보였다. 따가운 햇빛이 파도의 몸통을 타고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물보라 사이사이로 빛이 스몄다가 부서져 물낯은 반짝이는 보석이 뿌려진 비단 같았다. 그렇게 잔파도가 온바다에서 생겼다가 스러지며 파도는 생각을 뒤척인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밀려서 당도한 곳에 작은 섬이 있었다. 종일을 섬주위로 모여드는 파도로 섬은 마치 파도를 끌어 모으는 것처럼 보였다.
파도가 손짓을 멈추고 소멸되는 곳에 백사장이 이어져 있었다. 하얀 소라 고동껍질과 줄무늬 희미한 백색 조개껍질들이 모래보다 많아 끝없는 조개 무덤처럼 보였다. 가끔 갈매기만이 끼룩끼룩 허공 속의 정적을 깨 줄 뿐이다. 아기는 조개껍질은 버리고 고동껍질을 집었다. 손이 작아 고동껍질 서너 개 밖에 잡을 수 없다. 고동은 바닷물과 햇빛에 씻기고 씻겨 투명한 백색으로 속껍질까지 보일 정도이다. 아기는 바지주머니를 뒤집어 조개껍질을 버리고 소라껍질을 집어넣었다. 주머니가 작아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흘리는 게 더 많다.
조금씩 조금씩 걷다보니 투명하게 생긴 몽돌 조약돌이 눈에 띈다. 이번엔 소라껍질을 버리고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던 아기는 하품을 몇 차례 하더니 손에 조약돌을 쥔 채 졸기 시작했다. 해가 서쪽으로 조금씩 밀린다. 갯벌 쪽에 나갔던 엄마가 아이를 찾아 업고 갈 때서야 아이의 손에서 조약돌이 스르르 백사장에 떨어졌다.
아기별 하나가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파도 출렁이는 바다만 보일 뿐 아무도 없다. 어른 별들은 너무도 먼 곳에서 있어 그곳까지는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까아만 밤 빛깔이 드리워진 바다 위를 떠돌아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별은 외롭게 깜빡이며 정처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이 작은 섬을 발견하곤 다가왔다.
바닷가에 작은 초가집이 한 채 있고 반쯤 열린 들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창틈으로 보니 안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기별은 또래를 만난 반가움에 한껏 별빛을 반짝여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아기는 곤한 잠에 빠져 깨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기별은 몇 번이나 힘주어 반짝여 보았지만 아기는 가끔 뒤척이기만 할 뿐 꿈속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기별은 섭섭하고 안타까웠으나 잠을 깨우지 못한 채 들창 밖에서 아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아기별은 아기의 머리카락, 볼그레한 볼, 작은 코, 입, 도톰한 발 등을 하나하나 외울 듯 훑어보며 창밖에 머물렀다. 밤은 깊어가고 시간이 흘러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이슬이 풀잎 위를 굴러 또르르 맺히기 시작하였다. 아기별은 밀려가는 밤을 따라 서쪽 길로 넘어가야만 했다. 아기별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떠났다.
다음날 밤 아기별은 기억을 더듬어 작은 섬의 초가집을 찾았다. 들창으로 넘어다보니 아기가 잠들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제 잠든 모습 때 보다 더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아기별은 반가움에 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러나 아기는 아기별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기는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 옛날 옛날에 작은 별이 있었단다. 작은 별은 호기심이 많아 우주의 먼 곳을 구경하러 떠났다가 엄마 아빠별을 잃어 버렸단다. 작은 별은 많이 울었단다. 같이 놀 친구도 없이 ----.”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나지막하고 작게 이어졌다. 아기는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기의 눈이 별이 되고 있었다. 아기별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방문 앞으로 다가 갔다. 등잔불이 창호지를 힘겹게 뚫고 오느라 더욱 엷고 희미하게 흔들렸다.
“작은 별은 떠돌다가 어른 별자리에 다가 갔단다. 그러나 어른 별자리의 별들은 자기들의 별과 다르게 생겼다고 작은 별을 때리고 멀리 던져 버렸단다. ----- 아기별은 다른 곳을 떠돌다가 아기별 무리를 만난 적도 있었어. 반가워서 다가갔는데 아기별이 자기들과 다른 빛을 낸다며 쫓아버렸단다. 그 뒤로 아기별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별이 불쌍하지. 지금 쯤 어느 밤하늘을 떠돌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니. 한번 만나보고 싶지?”
“응.”
아기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때 아기의 눈에는 이슬처럼 반짝 눈물이 맺혀있었다.
아기별은 방문 앞에서 이야기를 엿듣다가 할머니의 얘기가 그치자, 들창 가로 다가갔다. 아기는 눈에 눈물이 글썽한 채로 잠이 들었고 할머니는 등잔불을 막 끄고 있었다.
작은 별은 창가에서 깜깜해진 창안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오래 울먹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먼 곳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서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아기별은 힘없이 서쪽 길로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자꾸 울먹여 바다에 빠질 것만 같았다.
<불사조의 아침. (도)나무와 숲.2009>
<문학서울 . 서울교원문학호간 (도)좋은문학.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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