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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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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15:02:32, 조회 : 587, 추천 : 41 |
<미니픽션>
술맛 죽이는 대학
구준회
“야, 우리 애가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 아니냐.”
“가나다군, 내신형, 서류형, 논술형, 면접형, 적성검사형, 학생부우수자, 글로벌인재, 논술우 수자, 지역우수인재, 입학사정관제 이런 말 너 아냐? 이것이 올해 대학입시 용어 중 극히 일부야. 2010년 대학 입학시험 유형이 수시모집만 2,500여 가지, 정기시험까지 합치면 3,0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나는 밤하늘 별 보는 것 같아, 이를 전부 파악해 최적의 입시를 치루는 방법 자체가 밀림 속 헤매기야. 수시, 정시 대학 입시 안내서가 백과사전 보다 더 두꺼 워, 입시 유형 연구가 학과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난해한 실정이란 말이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여 다른 동창 보다 일찍 아이를 둔 친구 놈은 술잔을 기울이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들은 후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등장한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그래 공부는 잘하지?”
친구의 잔에 잔을 부딪치며 예절성 발언을 던졌다.
“문제는 공부를 안 한다는 거지. 완전 깔판이야. 깔아줘.”
“그래도 입시 제도가 다양하니 대학을 갈려고만 하면 길이 많겠지.”
“야, 말도 마라. 이놈이 공부 점수가 안 되니,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룬 후 자퇴하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1학년 점수부터 학적부에 기재돼 대학 갈 때 내신점수가 밀리니 불리하다며, 검정고시를 치루면 그 점수로 하니 검정고시 준비하겠다는 거야. 나 참“
“아, 그런 것도 있나?”
“허 이 친구 그쪽엔 까막눈이군. 고생해서 애를 달랬더니, 그렇다면 농어촌지역 배당 전형이 있데요. 시골로 이사 가자고 해서 작년에 내가 직장도 때려치우고 시골로 이사 간 것 아닌가.”
“그런 사연이 있었구먼?”
“시골 가니, 영 괴로워. 일도 맘에 안 들고 친구들도 자주 못 보고, 내 삶이 완전히 삐뚤어지고 있다니까. 또 임원을 하면 입시에 유리하다고 해서 와이프가 팔자에 없는 어머니회 임원을 하며 돈만 펑펑 쓰고 있어. 와이프가 반 애들 찾아다니며 애 선거 운동도 해 보고, 봉사 점수가 높으면 대학 가는 전형도 있다 해서, 애하고 같이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 똥걸레 빨고, 목욕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몰라. 그 뿐만이 아니야. 글로벌 전형이라나 뭐라나, 영어해야 된다 해서 와이프가 면사무소 청소해주며 고액 과외비 대고 있어. 대학 땜에 가정생활이 엉망이야”
“별별 방법이 다 합격 자격이 되네?”
“그뿐이 아니야.”
친구는 몸을 바짝 들이대며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전형이 있다 해서 손해보고 집도 팔고 무주택자가 됐고, 자가용도 없애야 된데서 버스타고 산다니까.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 오늘은 애한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뭔데? “
이번엔 내가 몸을 밀착시켰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정상적으로 잘 자란 것이 어필되면 입학사정관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대학을 갈 수 있으니 부탁한다며.......”
친구는 말을 멈추고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내 눈에 충혈된 눈동자를 맞추며 말했다.
“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줄 수 없겠느냐는 거야, 위장 이혼 .......”
그 말을 듣자니 대학이라는 거대한 귀물이 검은 가루를 휘날리며 날아와 술잔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보였다.
< 술집. ㈜우리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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