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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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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15:06:26, 조회 : 684, 추천 : 70 |
대입 개그
구준회
“저게 뭐지?”
“구름이야.”
“아니야.”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친구 애가 하늘을 가리키며 입씨름을 하고 있다. 보다 못해 거들었다.
“저건 제트기 구름이라는 거다. 제트 비행기가 날며 뿜은 추진 열기가 추운 하늘 위에서 잠시 구름이 되었다가 사라진단다.”
잘 설명 했다고 생각하며 애들을 보았다.
“아니면 어떻게 할 거예요?”
“......”
순간 아들 친구 애의 얼굴을 황당해서 바라보게 된다.
그 녀석의 스승은 개그맨이었다. 어머니마저 직장에 나가 여성상위권을 드날리며 살기 시작하면서 녀석의 하루는 티비가 보모였고 스승이 돼 갔다. 특히 미국 일본을 거쳐 도입된 여러 개그맨과 연예인들 간의 입씨름 개그, 즉 토크쇼는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그맨과 연예인들은 어떤 질문을 받아도 곧바로 대답을 해야 한다. 생각하거나 머뭇거릴 틈 없이 가차 없이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 답변보다 튀는 말 위주로 순발력만 드러나게 된다. 거기에 녹음된 폭소 음향을 붙여 틀어 주니 시청자는 군중심리로 생각 없이 넘어가게 된다.
티비에 길들여 갈수록 그 녀석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걸로 생각했고, 당연한 듯 실천해 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씨가 꽂히니 싹을 틔우고 꽃이 펴 갔다. 세상을 배워 쌓아 가는 학생이지만 생각을 하는 방법이 부정과 궤변이 정당화 돼 가고 왜곡이 정도正道였다.
녀석은 부모와 선생님이 제재하는 지각, 결석, 담배, 술, 장발, 패싸움 등등이 이해가 안됐다. 그래서 해봤다. 당연히 잔소리가 이어졌고 당연히 말게임이 시작된다.
-오늘은 뭘 하고 지냈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
-아닐 수도 있잖아요.
-얘야 그게 무슨 소리니, 부모님이 말씀하시는데. 부모님 말 잘 듣고 효도도 하며 살아야지.
-무슨 소리예요. 효도라뇨. 자식한테나 잘 해주면 되죠. 부모님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다 받았잖아요?
-…….
녀석은 세상엔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해 갔다. 어떤 진리라는 것도 다 말게임 세계에 올려놓으면 박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과 대화를 즐겼다. 무슨 말을 해도 전처럼 때리거나 욕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스승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보복하거나 뒤끝이 없었다. 벌점제 스티커를 발부하는데 누적돼 봐야 청소 한번 시키면 없어졌다.
- 올해 교육청에서 체벌 금지 됐잖아요. 못 때리죠? 때려 봐요. 때려만 봐요.
- 선생님이면 다예요. 틀릴 수도 있잖아요. 우리 아빠보다 돈 더 벌어요?
주로 들이대는 말인데 만사형통이었다. 부모 말에는 ‘못한다, 하기 싫다, 싫어요.’ 라고만 하면 끝이었다. 덩치가 부모보다 크니 힘으로도 부모가 이길 수 없었다. 교사가 스승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용서를 쌓아 가듯 부모도 자라 가는 과정의 한 때 치기나 방황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녀석이 큰 효도를 했다. 대학 입학시험에 당당히 합격된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의 성적란은 하위를 깔아 주고, 지각, 결석, 정학 기록이 화려해서 부모는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담임선생님도 1년 내내 잠만 잤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그러던 녀석이 3,000가지가 넘는 입시 전형 방법 중 입학사정관제 면접 전용 고시를 보더니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 입시는 현재의 성적이나 학생 상태를 보는 게 아니고 앞으로의 전망과 가능성을 보고 뽑는 면접 전형이라 했다. 개성이 톡톡 튀는 평범을 넘어선 이상을 소유한 미래 인재상을 인정받아 합격했다나.
하여튼 그날 녀석의 아버지는 티비를 방 가운데 모셔 놓고 술을 부으며 절을 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절을 한 후 티브이 위에 양주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는 소문도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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