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준회
|
2007-09-19 09:21:12, 조회 : 686, 추천 : 50 |
제목 하얀 편지
이 편지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불속에 있었다. 모든게 정지된 차가운 육신에 화장장의 가스불이 밤을 새 세포마다 지상의 마지막 온기를 불어넣을 때 그녀의 영혼은 모든 불길을 버리고 머언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남자는 알지 못할 기쁨에 이 편지를 부친 후 휴지 가득 앵혈처럼 뭍어나는 각혈을 하며 끝없이 잔기침을 토하고 있었다. 그 도시의 우편 집중국 직원은 받을 사람 란이 공란인 한통의 편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고, 한번에 골인이 않되자 재차 던져 넣었다.
당신을 보내고 오랜 세월을 난 당신을 보내지 못해 아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온몸의 세포가 바늘로 찔리고 살갗 가득 아우성치는 고통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을 그리워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세월의 등뼈가 그리 시릴줄 진정 몰랐습니다.
당신을 보내고 세상의 거리를 떠돌 때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 속에 당신은 있었습니다. 부분 부분 숨어있는 당신으로 확실히 없는 당신이 더욱 커져 이별을 확인 받곤 했습니다. 이 절망의 진실이 난 싫었습니다.
당신을 보내고 당신과 나눈 대화 하나 하나가 오랜 세월 참 많이도 미안했습니다. 한 인간의 깊이가, 이해의 폭이 당신의 언어를 더 보듬어주지 못했고 혹은 섭섭하게 한 것을 되새김 했습니다. 그 말들 중에 당신의 아픔도 숨어있었음을 왜 그때는 몰랐었는지요. 나이가 굵어갈수록 순간 순간마다 당신을 더 만나보고 싶어함은 이런 까닭입니다
당신을 보내고 사람이 세상 중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만으로 죽음을 느꼈을 때, 난 이미 팔만 사천 번 저승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오랜 세월을 당신의 이름을 지우려 애썼습니다. 너무나 좋았던 세 글자, 빛 잃은 이 낙서가끝나지 않는 건 그만큼 당신은 내게 무한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차창에, 백사장에, 저 하늘에 --- 지우면 또 써지는 그 이름으로 어느덧 더 또렷히 아름다와지는 이는 당신이었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이야기 하나 묻어놓고 갑니다. 당신과 나 죽어 이 흙에 더하는 전설을 밟고 사람들은 태어나고 그 사랑은 조금씩 퍼져 갈까요. 그럴겁니다. 이게 어떤 사랑이었는데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서로를 보내고 우릴 닮은 이슬들이 동터오는 새벽 쏟아지는 별 되어 머언 두 점 서로의 무덤가로 내릴 때 우린 영원히 남을 초록 빛 기억 땜에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을 겝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 때문에 사랑을 닫는 아픔이 길었어도 당신, 당신 이었기에 괜찮습니다.
<미니픽션 제2집 5분의미학, 서울셀렉션 2005 >
<문학서울 통권14호 서울교원문학회 간 (도서출판)좋은문학 20111.5>.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