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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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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9 02:54:52, 조회 : 440, 추천 : 28 |
다른 몸의 길
구준회
매일 출근하는 학교에 언제부터인가 그만이 늘 앉는 자리가 생겼다. 교사의 출근이란 일반직장인보다 이른 편이라 학교 안 숲엔 밤의 흔적이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 시간이 된다. 출근한 새벽 숲은 밤새 몰려왔던 안개가 떠난 자리로 정적만이 밀려온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실안개도 있고 이슬에 축축이 젖은 습기가 요기를 띄우고 있다. 그 고요가 나무 이곳저곳 잎사귀 안팎을 돌며 밤과 낮의 떠남과 도착을 점검하고 있는 듯 긴장이 감돈다. 숲의 얼굴을 바꾸기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다. 그러면 그는 그의 자리에 앉아 나무 사이로 먼 산을 바라본다. 남산. 서울의 가운데 굴기해 있는 생각덩이. 밤새 무슨 생각에 잠을 설쳤는지 이제야 이불 같은 구름을 막 벗겨 내고 있다.
잠시 후 새 한 마리가 이 가지 저 가지를 오가며 울기 시작한다. 어디서 잤는지 알 수 없지만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는 듯 가지를 구르며 우는 모습이 다급하게 들린다. 답변이 없자 더 바빠진다. ‘오래 외로우면 소리가 난다.’새도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디선가 답변의 새 울음이 들리고 한 마리 두 마리 곧이어 여러 쌍의 지저귐으로 조금씩 숲의 고요는 깨진다. 숲과 나무는 새벽 새로 인해 정적인 공간에서 동적 활기의 공간으로 변신하며 하루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들이 좋아하는 곳은 잎사귀가 우거진 등나무 지붕 위이다. 그곳에는 새둥지 하나가 남아 있다. 올해 여름, 알을 부하하고 곧 떠나버렸지만, 새 한 쌍이 둥지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잘 눈에 띠이지 않는 등나무 잎이 우거진 안에 은밀히 한 쌍의 새는 나뭇가지와 마른 풀을 부지런히 모아와 둥지를 지어나갔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외곽 골조를 만들고 마른 풀로 안과 바닥을 다져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한 마리 새가 하루 종일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해 등나무 아래 나무 벤치를 밟고 올라서서 찾아보는 그때 새의 눈과 맞닥뜨렸다. 불과 한 자 거리도 안 된다. 완벽한 원형의 동그란 눈, 그 눈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일순 당혹해진다. 당연히 도망을 가야 할 거리인데 도망도 가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도리어 그를 서늘하게 하였다. 새의 몸통 아래 하얀 것이 보였다. 알이었다. 알을 부하시키기 위해 체온으로 감싸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새는 자기가 희생당할 수도 있는 범위에 사람이 다가와도 동그랗게 바라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등나무 쪽을 보면 앉아서 동그란 눈을 깜빡이고 있을 새가 생각났다. 언제나 조심성이 많고 나약하고 겁 많게 보이던 새가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저런 눈빛을 발할 수 있을까. 저렇게 며칠째 꼼짝 않고 있을 수 있을까.
그는 가끔 그 새를 보러갔다. 다만 처음처럼 가까이 가지 않고 아래서 올려다보고 오곤 했다. 언제나 미동도 하지 않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가끔 또 한 마리의 새가 그 둥지를 들락이는 걸 목격했다. 어디선가 나타나 옆 나무 가지 위에서 잠시 바라보다 날아가곤 했다. 어느 날 가보니 새끼가 두 마리 있었다. 알 두 개를 품었던 것이다. 젖은 듯한 갈색 털에 못난이 얼굴을 하고 끝없이 주둥이를 하늘로 치키며 구구대고 있었다. 엄마 새는 새끼들을 품속으로 끌어들이고 빠져나오면 끌어들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 또 한 마리 새가 둥지로 파고들며 잡아 온 먹이를 새끼에게 주곤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며칠 후부터 가보면 가끔 어미 새는 안보이고 새끼 새들만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어미 새가 없어서인지 소리도 지르지 않고 숨은 듯 조용히 있었다. 다만 그 새끼들도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바라봄 속에 모든 것을 담은 듯 했다.티 없는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경계심과 기도가 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그들이 비상의 꿈과 희망과 설렘으로 하루의 아침과 나날을 맞이하기 바라며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있었고 그들은 자라갔고 가끔 들러 바라보는 재미에 더위도 식어 갔다. 그 둥지가 보이는 그의 자리에 그는 언제나 앉아 그들이 꼬몰락 거리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보니 빈 둥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가슴에 구멍이 뻥난 듯 충격이 다가왔다. 언제나가 아니라 가버릴 수도 있구나, 사라질 수도 있구나. 그 뒤로 그의 자리에 앉아 그 곳을 바라보면 그의 정원 전체가 빈 듯 허해 보였다.
그렇게 가을이 왔고 교정엔 단풍이 빨갛고 노랗게 제 빛을 뽐내며 만개하다 져갔다. 어느 날 본관 수업을 끝내고 별관 교무실로 오던 중 단풍나무 위에서 새소리가 요란스레 서로 화답하며 부르고 쫓는 것이었다. 순간 ‘그 애들일지 몰라’ 라는 생각이 들어 새들을 빠르게 눈으로 찾아보았다.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를 깡충거려 뛰어다니며 부산히도 소리를 주고받고 있을 뿐 그를 쳐다보는 놈은 없었다. 그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그 새들에 대해 아는 것은 눈동자뿐이었다. 눈동자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래서 스쳐 지나도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밀려온 순간 허탈했다. 겨우 고것 밖에 아는 것이 없는 사이였구나.
수능을 며칠 앞둔 고3학생들의 수업은 마지막 정리하는 자습이 이어진다. 그 고요에는 창밖의 져가는 단풍잎 때문에 씁쓸함이 배가 되곤 했다. 조금 있으면 후레쉬 섬광 속에 떠날 아이들, 교탁에 서서 학생들을 보면 가끔 눈동자가 마주친다. 눈동자, 이 아이들의 눈동자 외에 그가 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아파야한다고 느껴졌다.닿을 수 없는 다른 몸의 삶이 생의 끝 순간까지 이어질 뿐이구나
<그 길을 견눈질하다 우리글 미니픽션4 .(주)우리글 2012.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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