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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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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9 02:58:14, 조회 : 416, 추천 : 25 |
아파트 여로
구준회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 많다. 특히 무형의 존재가 그러하고 변화의 존재가 그러하고 떠난 존재가 그러하다.
135개동의 5층 아파트가 있었다. 그 산 중턱의 허리를 따라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도 펼쳐지는 거의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도열하여 서울의 저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탈진 그 산의 허리에 산굽이 따라 도로를 내고 도로의 아래위로 무차별 시멘트를 부어 지은 서민아파트 135채. 그곳 사람들은 새벽에 그 아파트를 나와 도시의 저지대로 내려가 일을 하고 저녁엔 산비탈을 꾸역꾸역 올라오곤 했다.
그곳의 한 칸에서 중고등학교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지고 난 후 생각이 많아진 아이로 변한 중3 무렵부터 밤10시경 집을 떠나 그 아파트 길을 한없이 걸었다. 아파트 길을 걷노라면 저 아래 휘황히 빛나는 서울 시내의 불빛이 있는 곳을 하계라고 불렀고 이곳을 상계라고 명명했었다. 하계는 확실히 이곳과 달랐다. 차도 빌딩도 학교도 사람다운 사람도 모두 하계에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이 부럽지 않았다. 그 당시 그보다 괴롭고 힘든 것은 왜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었다. 그 해답이 그 아파트 여로에 있는 듯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내려다보이거나 올려다 보이는 창문 안쪽 풍경들이 멀리서 꿈틀대는 생존의 색깔과 소리와 표정을 전해주었다. 여름에는 밤의 도로에 삶의 모습이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뒹굴었다. 그 옆을 지나며 싯다르타의 번뇌처럼 이승에 회의했다.
겨울엔 눈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아파트의 겨울밤은 고요했다. 눈을 맞으며 하얗게 야위어 가는 생각들을 연결하고 꿰매며 사춘기의 삶 찾기는 계속됐고 상념만큼의 눈송이가 얼굴을 때렸었다. 그 중 괜찮은 놈을 모아 노트에 옮기며 손가락에 입김을 불었었다. 어느 겨울엔 교회의 상급생 누나가 동참해 겨우내 걸은 적도 있었다. 답 없는 수많은 질문과 침묵과 바라봄이 아파트여로의 길 구비마다 내렸었고 아파트의 회색 벽마다 때렸었다. 상념의 티끌들이 몇 권의 노트와 일기장을 메웠다. 동서양의 철학자 시인의 이름이 간간이 껴있었다. 그들도 답을 주지는 못했고 그들 이후의 생각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날마다 창문은 티브이 화면처럼 흘러갔다. 저녁을 먹고 있는 창, 공부를 하고 있는 창, 그림을 그리고 있는 창, 목욕을 하고 있는 창, 가족끼리 웃고 있는 창, 춤추고 있는 창, 싸우고 있는 창 ,아이를 때리고 있는 창, 울고 있는 창, 환자가 누워있는 창, 캄캄하게 닫힌 창, 각각의 화면이 눈물에 가려져 흐려지다 흑백의 사진으로 멈추고 이어 하얗게 부서져 갔다. 그 사이로 상계를 향한 눈송이는 암흑의 하늘을 뚫고 내려와 가로등 언저리에서 잠시 펄럭이다 발치에 내려앉곤 했다. 근원도 모르는 회의는 밤하늘 같았고 설핏 뵐 것만 같던 답은 힘없이 시간의 길에서 소멸하곤 했다. 발길은 3년을 이어갔지만 3년만큼의 시체만이 아파트 여로에 박혀질 뿐이었다.
그렇게 그곳을 떠나 하계에서 수십 년을 보내며 처음엔 그 때 몇 가지 깨달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보다 어느 순간부터 그도 꺾고 지내게 되었다. 다들 그런 거라며 현실의 먹을거리와 자잘한 환락, 조막만한 지위와 권위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며 동분서주 했다. 약육강식의 수레바퀴에 끼어 쳇바퀴를 돌리며 나이를 더해갔을 뿐이었다. 창 밖에서 창 안을 바라보던 때와 달리 창안의 당사자가 되어 모습을 연출하는 일은 연출자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이생의 살이었다.
그렇게 살다 잊고 있었던 아파트 여로를 한번 찾아 갔다. 온통 산은 숲으로 울창했으며 아파트는 모두 없어졌고 도심을 지키는 녹지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숲을 헤치고 올라가 보니 아파트 여로는 공원 산책로로 보수되어 한적한 숲 속에 숨어 있었다. 비바람과 세월이 시멘트를 간간히 무너뜨렸지만 그 결결히 배어 있는 옛 발길의 숨결은 마침 부는 산들바람 결이 들려주고 있었다. 그 길에 서서 눈을 감았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 많다. 특히 무형의 존재가 그러하고 변화의 존재가 그러하고 떠난 존재가 그러하다.
<그 길을 견눈질하다 우리글 미니픽션4 .(주)우리글 2012.2.10>
< 문학서울 제16호 서울교원문학회 간, (도)좋은문학 20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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