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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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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5 22:40:30, 조회 : 140, 추천 : 3 |
<미니픽션> 백팔배
구준회
그가 시간이 갈수록 깨달은 것은 살아 온 것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평생을 진실되이 나답게 살자며 되도록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세워 산 것 같은데, 남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머리가 커지자 아버지의 삶이 보잘 것 없다는 것처럼 폄훼하는 말을 하기 일쑤고, 어리석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마누라는 대놓고 하는 판이다. 그 경계선을 기억해보니 퇴직시점과 맞아 떨어졌다. 돈 몇 푼 집안에 벌어 온다고 인권과 사람을 너무 무시했대나 뭐했대나 사사건건 불평불만이었고 앙갚음성 언행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믿었던 진실이 속수무책 무너지고 무가치해지는 것을 바라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근력도 기력도 논리성도 화려했던 표현력도 다 어디로 갔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몸을 탈출한 뒤였고 병만 친구라며 찾아드는 것이었다. 말발이라는 게 도대체 먹혀들 틈새가 없었다. 말발이라는 게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발이 중요한 것이었다. 말이 딛고 있는 사회적 발에 가치가 있었다.
그는 그제야 진실의 반대에 대해서 연구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거짓일 텐데... 그는 중얼거렸다. 결국 그는 세상과 인생을 좌지우지했던 두 축, 진실과 거짓 중 진실만을 알았지 거짓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살아오면서 보아도 거짓이 진실을 앞지르고 출세하고 돈 잘 벌고 유명해지는 걸 많이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와 먼 일이라며 애써 관계를 끊어왔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며 더 달려갔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삶의 반이 진실이라면 못해도 나머지 반은 거짓이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아니 그건 한 몸, 일심동체의 앞면과 뒷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 극우와 극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저주가 되지 않던가. 그렇다면 거짓도 진실이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어떤 것이 더 득세할 뿐인 것이다.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는 효용가치가 떨어진 여건이 그를 평가하는 현실이 된 것 뿐이었다. 지금은 등을 보이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 현실이 던지는 언어폭력이 일편 옳은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라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잔물결이 모랫둑을 무너뜨리듯이 조금 조금씩 번져오고 있었다. 그의 번뇌는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들기 시작했다. 그는 애들과 마누라가 출타하는 낮에 골방에 두꺼운 방석을 두 겹 깔았다. 그리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두 달 육 개월 일 년, 해를 넘도록 매일 그는 절을 했다. 땀이 흠뻑 젖을 때 쯤 그의 절은 끝나곤 했다. 그의 손에 걸쳐진 백팔염주의 첫 알이 다시 시작 되려할 때 그는 절을 멈추고 오래 끓어 엎드려 있곤 했다. 나중에는 오체투지의 자세로 오래 엎드려 있기도 했다. 처음 한 달 그의 주문은 -“내가 옳았어” ―“내가 틀렸어” 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뒤 – “내가 옳았어.” 는 점점 사라지고 -“내가 틀렸어” 만 남아갔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말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백팔배는 그가 살아온 지난날의 진실을 부정하지도 안 살아 본 거짓을 부정하지도 않는 새 존재 방법이 되어갈 거라고 믿고 싶었다.
<2016 미니픽션집 거짓말을 삽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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