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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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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5 22:42:47, 조회 : 129, 추천 : 3 |
사람 병
구준회
동물원엔 동물이 살아서 동물원이다. 그렇다면 병원엔 병이 살아서 병원이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병원에서 병을 볼 수가 없었다. 온통 사람 뿐, 병원 로비 넓은 홀에 그득한 사람들을 보며 갸웃갸웃하던 그는 무릎을 딱 쳤다. -아, 사람이 병이구나. 아, 저 병들- 그는 홀에 가득찬 사람들을 보며 출렁이는 병의 파도를 보는 듯 했다.
그는 순번을 기다리다 호명하는 데로 끌려들어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고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간이 의자에서 한 시간여를 기다린 후에야 의사의 호출을 받았다. - “ 제가요 머리가 아프고요, 목에서 가래가... ”- “이리 돌아누워 봐요.” 의사라는 사내는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듯 컴퓨터 화면의 엑스레이 사진만 보더니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등에다 청진기를 댄 후 툭툭 치더니 -“ 검사 몇 가지 더하고 오세요.”라며 일어섰다.
몇 개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또 눕고 찍고 빼고 불고 났더니 허기가 지고 특히 병원 특유의 소독내가 속을 뒤집어 영 불유쾌했다. 그리고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게 너무너무 지겨워 미칠 것만 같았다. 몸살기로 온 삭신이 쑤시고 두통이 머리를 난타질 해댔으며 식은땀으로 온몸이 흥건해 무조건 눕고 싶었으나 기다려야 했다. 병의 총집합소에서 웬만한 병은 정상취급이다.
의사의 꾀죄죄한 가운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윗주머니 언저리엔 한주먹 꽂힌 볼펜보다 볼펜 똥이 색색깔로 그어져 엉켜 붙어 있는 게 더 잘 보였다.
“폐렴이네요. 입원해서 경과를 좀 보지요.”
“그럼 바이러스나 병균이 밖에서 들어와 걸린 건가요?”
“어데예, 자기 몸에 있던 것들이지예.”
“녜?”
그가 병원체 자체란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이 세상 글자가 아닌 낙서를 그어 건네고 일어섰다.
그렇게 통과의례를 혹독히 겪고 저녁 늦게야 6인실 병실에 누울 수 있었다. 이 병실은 전부 내과질환 환자들이란다. 입구 쪽엔 위 수술을 기다리는 위암환자, 맞은편엔 80이 넘은 기관지환자로 입에 호스를 꽂고 시도 때도 없이 가래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 옆은 간경화, 후두암 등이었다. 폐렴인 그는 병축에도 못 들 지경이었다.
너무 지쳐 조금 쓰러졌다 시끄러워 깨보니 위암이 80가래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 야 영감, 병실을 옮겨. 도대체 잠을 잘 수 있어야지. 왜 소리를 꿱꿱 지르고 지랄이야.”
80가래는 폐만 증세가 심각한 게 아니라 치매가 심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해 끊임없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며 해소기침을 했다.
“ 거 누구야, 가, 잡에 가야돼! 콜록 콜록 크으 캑 캑”
이런 단어의 반복인데 워낙 크게 소리를 질러 싸니 온 병실 사람들이 깜짝깜짝 깨는 것이었다. 위암은 간경화에게 “그렇지 않냐”고 동의를 구하며 80가래를 종주먹대는데 간경화는 나이에 밀려선지 그저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위암은 그의 머리 맡에 있는 티브이 리모컨을 독점하고 지맘대로 볼륨을 크게 올려 도저히 잘 상황도 아니었다. “티브이를 끄자”했더니 자기는 “티브이 보면서 잠드는 체질”이라 안 된단다. 그리고는 깬 김에 자기 병 증세, 의사 욕하는 얘기, 간호사 욕 , 병원의 문제점 등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이었다.
인내하며 참고 참았던 그는 복도로 나갔다. 간호사에게 “귀마개를 사게 링거바늘을 잠시 빼 달라”고 했으나 “병원 밖 출입금지” 라는 말에 복도 끝 의자에 가 새우잠을 청해야 했다. 얼마 후 간호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귀마개를 가져다 줘 그는 귀에 틀어막고 병실 침대로 들어갔다. 첫날은 종일 너무 피곤했고 혼수상태여서 잠을 잤으나 이후부터는 열이 잡히며 몸이 호전되자 귀마개로도 잠들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는 도저히 이대로 지내다가는 정신과 마음에 더 큰 병이 들 것만 같았다. 그의 속이 외쳤다“삶이 질병이다.”
그는 기다렸다. 며칠 후 의사가 와 “이젠 열도 잡혔으니 2,3일 후에 퇴원해도 될 거 같다”는 말을 했디. 의사를 보며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말을 나꿔챴다. “그럼 오늘은 안 될까요. 내일 딸 결혼식 날인데 웬만하면 아빠 노릇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평생에 한이 되지 않게요.” 의사는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어- 좀 무린데- 뭐 정 그러시다면 오후까지 몇 가지 처방을 바꿔 주사한 후 퇴원하도록 해보시죠.” “ 어구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다시 세상에 배출 되었다. 거짓말 한번으로 폐보다 중한 뭔가를 보호하게 된 것이라고 흡족해 하며 그는 같이 배출되는 병균들에 앞장서서 병원을 빠져 나왔다.
<2016 미니픽션집 거짓말을 삽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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