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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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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01:46:21, 조회 : 111, 추천 : 3 |
(미니픽션)
섬 새벽
구준회
이 작은 섬의 새벽을 산책해보면 숲이 들려주는 다양한 소리에 놀라게 된다. 새들의 새벽 인사 뻐꾹이 두견새 꾀꼴이 말똥가리의 피아노와 현악4중주가 귀를 깨워준다.
또 숲에서는 끊임없이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어볼 수록 아련히 어린시절 하늘을 떨어져 잎새에 닿던 빗소리다. 내겐 비가 안 오는데 웬 빗소린가. 그러나 이 빗소리는 이슬이 흠뻑내린 숲과 나무에서 새벽이슬이 아래 키 작은 잎과 풀에 떨어지는 소리다. 밤새 숲은 날마다 이슬로 비를 흠뻑 맞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경이롭다. 그 숲만의 빗소리 앞에서 오래 앉아있게 된다.
또 섬의 새벽은 안개의 놀이터다. 산쪽을 조금 오르려면 금세 나를 스쳐올라 앞을 막고 아랫마을을 지워버린다. 길도 감췄다 내놓고 숲도 숨겼다 보이며 숨바꼭질을 한다. 섬의 안개는 개구장이 어린 안개일 것만 같다.
새벽 숲엔 환영객이 많다 다양한 꽃이 화사한 얼굴로 웃어준다. 그중 이 섬 으뜸꽃은 섬수국이다. 커다란 꽃다발 하나가 꽃 한송이인데 사람 얼굴만 하다. 연보라빛 작은 꽃잎들로만 어쩜 이토록 풍성하게 장식해 큰 기쁨을 건네는 꽃의 마음이 감동을 준다.나도 손을 흔든다.
안타까운 것은 내 눈이 나빠져 그 예쁜 꽃을 더 깊이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거다.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소리가 더 잘 들리나보다.
이 섬을 찾은 것은 병 때문이다.지병인 당뇨가 오래되니 합병증으로 망막병증과 신부전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병원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어 자연치료를 위해 이 섬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섬이 나를 치료해 줄까.
섬에서 나는 자연채식만 하니 먹는 게 거의 단식에 가까와 체중이 날마다 줄어간다. 몸은 마를대로 말라가며 근력이 없어져 걷는 것도 힘겨워져 간다. 그래서 운동 겸 새벽 산책을 홀로 하고 있다.
병이 생기면 친구가 병으로 한정된다. 주변 친구와 차차 멀어지며 홀로 돼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몸의 병과 사귀다 친해지고 친구 하기로 하는 단계가 온다. 산보도 같이 나간다. 새들과 이슬과 안개와 수국 이웃을 만날 때도 물론 같이 만난다.
이 섬을 대둔도라고 부른다. 흑산도에서 통선으로 이삼십 분이면 닿는 K자 모양의 섬으로 세 곳의 옴팍들어간 바닷가에 몇 가구씩 모여 사람들이 산다. 사람이 귀한 섬이다. 그마저 노인들이 세상을 자꾸 뜨며 해가 다르게 사람이 줄고 있다 한다. 내가 머무는 곳을 복숭아 도 나무 목 도목리라 부른다. 복숭아 꽃나무 마을이니 무릉도원에 와 있는 셈이다.
내 병은 20여년 됐다. 나이가 스무살 정도니 청년기라고 볼까. 한창 때일 것 같다. 그래선지 대화가 안 통한다. 나는 병과 만나는 게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부분인 망막과 신장과 그로인해 같이 아파하는 장기들과 만난다. 때때로 안부를 묻고 눈치를 살피고 토닥여줘 본다. 한참을 바다쪽을 보고 앉아 고마움을 들려준다. 안개가 지나 간다.
나야 고마워
나야, 미안해
나야, 그동안 수고했다
오랜 세월 홀로 살피고 혼자 힘 쓸 때 보살펴주지 못했구나
이생, 땀과 눈물과 혈투의 시간이었나
성공도 실패도 하잘 것 없고 굴종과 회한도 부질없는 안개길이었나
그 세월 다 겪고 견디며 끊임없이 아팠겠구나
나야, 함께하는 동안 행복하였다
내 마음아, 내 가슴아, 내 눈물들아, 내 몸 하나하나야,
참 잘 버텨주었다 고마웠다 이제 좀 쉬려무나
산 아래 숲이나 바다 건너 섬마을 어디쯤이었으면 좋겠꾸나
새소리 물소리 바람 좋은 시골은 어떻냐
물안개 덮고 처음 전으로 가자꾸나
가슴에 손을 대고 물어주면 조금 따듯해져 온다.
이 섬의 유일한 식수원인 산 저수지 까지 걸음을 옮긴다. 댐에 올라 바닷 쪽을 내려다 보니 바다 바람이 올라와 땀을 식힌다. 섬의 양팔 사이로 가두리 양식장이 멀리까지 떠있고 그 안쪽에 앙증맞은 작은 백사장이 보인다.수천만개의 조개껍데기가 수천년 떠밀려와 파도에 부서져 모인 하얀 해안이다. 아무도 없고 애기 파도만 와 혼자 놀고 있다. 섬 정적만 끝없다.
그렇게 백사장도 혼자 파도도 혼자 저수지도 혼자 바람도 섬새도 이슬 안개 하늘도 세상도 혼자 이토록 잘 살고 있었다니. 그 속에 혼자인 병과 혼자인 내가 같이 있다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미 섬의 몸이였다. 섬과 나는 본래 무릉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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