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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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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02:52:14, 조회 : 82, 추천 : 2 |
미픽연작
구선생이 후줄근한 점퍼 속에 후줄근한 몸을 넣고 허적걸음으로 앞에 나왔다. 사회자의 인사소개에 낙엽 부서지는 박수소리가 끝나자 구선생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잘 안 나오려는 종이를 힘들게 꺼냈다.
“주제가 심각한데, 제가 낯가림이 심해 몇자 써온 걸 읽음으로 발표에 대신할 게요.”
그리곤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소통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고 들려왔다.그리고 잠시 후 아내와의 고통으로 들려왔다. 이게 무슨 뜻이 있는데. 그러자 아내와의 제일 큰 고통은 서로를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랗다
내가 모르는 것중에 양파가 있다.
양파는 꽃인가 열매인가 뿌리인가 줄기인가. 그중 하나인가 그 모두인가. 잘 모르겠다.
양파는 보는 것만으로 시선을 뺏는 아름다움이 있다. 양파의 투명한 피부 ,순결한 영혼 , 완벽한 곡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양파를 컵에 넣고 수경재배를 해보면 투명하고 맑은 실뿌리가 이승의 것이 아닌 어느 천국에서 온 듯 신비롭게 돋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소담한 확장을 무엇과 비교할까.
양파를 까 한겹을 세워도 그 옆에 속 한겹을 세워도 또 그 안,안을 세워봐도 완벽한 곡선과 질감과 투명감을 똑같이 드러낸다. 어느 것이 진짜 이 양파의 진실 일까. 첫 껍질일까 중간 속살일까 마지막 껍질일까. 아니 진실이 있는걸까. 다 진실일까.다 아닐까.
소통이 필요한 것은 다른 것들이 더 다를 때 이다.다르니까 팔다리 비슷한 이거 저거를 남과 여로 달리 이름했으리라
늙은 우리 세대는 소통이 무언지 모른다. 다름이 뭔지도 모르면서, 보는 것만으로 시선을 뺏기는 무엇으로 시작했다. 주물주가 만든 본능, 눈 코 입의 본능, 아랫돌이의 본능, 당김의 본능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혼례라는 형식을 거쳐 질풍처럼 노도처럼 시작됐다.
양파의 투명한 피부, 순결한 영혼, 완벽한 곡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컵에서 이 양파는 조금씩 본능 이후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양파의 실뿌리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편 몰래 자라 어느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남자에겐 이승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낯설음을 안겨주는 요구였다. 우리가 서로 알아볼 게 있단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 같은 가능성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양파이다. 남편은 감이나 사과 같은 존재 같다.글쎄, 소통의 종족이 아니다.
아내는 여러겹의 속살을 껴입고 있다. 생각법도 표현법도 싸움능력도 양파다. 거기에 비하면 남편은 과일 한 개 같다. 깔 것도 벗길 것도 없다. 한 꺼풀만 벗기면 감씨 몇 개나 사과 씨 두개가 속의 다다. 뻣뻣하거나 딱딱한 부속품. 그래서 괜히 딱딱거릴 뿐이다. 결국 양파의 자비심이 없다면 소통은 고통의 이음동의어는 아닐까.
그런데 몇 개의 과정을 거치고 생의 황혼길을 갈 때 쯤이면 못 배운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외로워서다.
“이상 입니다. 감사합니다”
구선생은 몇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 밑의 이마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자리로 들어 갔다. 좌중은 무슨 소리냐는 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한 사람이 일어났다.
< 한국미니픽션작가회릴레이픽션작품집 2조 아내가 사는법 게재 2017.5.10 한국미니픽션작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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