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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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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21:40:37, 조회 : 82, 추천 : 1 |
<미니픽션>
혼밥의 결말
구준회
가족관계증명서를 바라보다 머리를 젓는다. 이 부부의 유일한 연결점은 이 증명서 하나였다. 그곳에만 아내와 자신이 남편과 처로 등재되어 부부관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법외에 아내와 자신은 부부가 이미 아니었다. 어쩌다 언제부터 그리되었는지 머리가 혼돈되어 엉클어져왔다. 그는 눈을 들어 법원 청사를 훑어가다 첨탑 위의 하늘을 망연히 올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진절머리가 쳐졌다.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안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셔 지금의 자기를 본다면 뭐라고 하실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몇 겁을 우시거나 몽둥이질을 하실 것만 같았다 병신아들 부질없이 낳았다고.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는 상대와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단다. 이를 몰랐다. 아내는 9년이나 자기를 쫓아다니며 음독자살까지 시도했다. 그게 사랑인줄 알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아내는 표변했다. 오랜 세월 쫒아 다닌 보상심리가 발동해선지 사사건건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무지한데 용감하면 천하무적이라는 말이 있다. 공인 천하무적을 무슨 수로 대적할까. 얼마나 모르나를 모르는 것은 신도 못 말린단다.
부족한 건 자신이 메워주고 모자란 건 덮어주고 모르는 건 가르쳐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던가. 이 세상 누구도 모자라거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다 넘치게 안다고 생각한다는 걸 몰랐다. 특히 학력을 속이고 결혼한 부분이 있을 때는 반대급부로 더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을. 세상 결혼은 조금씩 미화 포장 속임 없이 성립될 수 없다는 진리를 반평생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아내는 조금 정도가 아니었다.
아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법원에 이혼서류룰 제출하러 갔다던 남편이 존댓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 모시듯 깍듯하게 말하며 정중히 대해 주었다.
"저녁 진지 드셨습니까? 아직 이시라고요? 티브이 조금만 더 보고 계시면 곧 차려오겠습니다."
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가 밥을 차려주지 않아 혼자 밥을 먹는 남편이었다. 그러니 아내가 밥을 먹든 말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무조건 말없이 티브이만 볼 뿐이었다.그러던 남편이 눈을 내리깔고 부엌으로 가 떨거덕 거린다. 연신 핸드폰의 레시피를 보며 뭔가를 찾아 냉장고를 수없이 여닫는다. 그렇게 딸 도움까지 받아 상을 차려놓고 "식사하세요." 한다. 손에 수저까지 쥐어 준다. 다 먹는 낌새를 보고 있던 남편이 사기대접에 냉수까지 정갈하게 떠다 상에 올려준다. 상 치우기 전에 큰절까지 한다.
"어머머, 이이가 왜 이래. 재수 없어!"
이벤트로 한번 그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 또 익숙하지 않은 짓에 어리벙벙하게 저녁을 때웠었다. 그런데 벌써 며칠 째 이어지고 있어 당황스럽기만 하다.
아내는 여동생 남동생 등 남편 쪽 형제자매가 오던 날이면 얼굴빛이 달라졌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주 불편하게 이마에 송충이를 세 마리나 그리고 그릇을 소리 나게 놓는가 하면 부엌 쪽에서 뭐라고 궁시렁 거리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위로 해주러간 자기에게 삿대질을 시작해, 부부싸움을 손님들 앞에서 일으켰다. 몇 번 이런 경우를 당한 동생들은 발걸음을 끊었다. 명절이 없어졌다. 가문 모임이 사라져 멸문화가 시작됐다.
손님이 없는 집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남편친구들은 지레 걱정되어 데려올 생각을 쫒고 부부동반 모임 시 바깥에서만 만났다. 외식을 하게 되니 아내 입은 먹는 것에만 쓰게 하고 헤어지면 되어 속내를 들키지 않고 흘러갔다. 그러니 자연 집에 손님이 오는 경우가 가뭄에 콩 나듯 했고, 그마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줄어 끝내 가뭄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 교회를 들락거리더니 억지로라도 지내던 그의 부모 제사를 우상숭배라며 점차 노골적으로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는 혼자 인터넷에서 제사상차림 음식을 주문시켜 몇 년을 지냈다. 문제는 애들도 엄마 따라 우상숭배라며 절을 안 하고 버티는 거였다. 몇 차례 설교도 하고 말 매도 쳤지만 종교의 힘은 강했다. 애들 앞에서 불협화음 내는 것도 지쳤다. 제풀에 져버린 것이다. 그 후 마음에 없는 교회 주보 놓고 찬송가 부르기로 대체되었다. 그런 날이면 그는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곤 했다.
애를 낳고 키우는 양육이 부부 평생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이 중차대한 일에 누구나 성공감을 느끼기는 당연히 어렵다고도 생각했다. 종교단체의 아버지교실도 얼쩡거렸다.
보고 배우고 따라 하기로 자라는 자식들에게 옛날 부모들은 보여지는 유일한 자로, 성실한 삶의 언행생활을 하며 부부 삶을 이어가면, 따로 노력할 일이 없는 걸로 알고 키웠단다. 애를 낳아 세 살까지는 생존을 살펴주고, 사춘기 전까지는 예의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며, 사춘기 이후엔 정으로 지켜봐주고, 스무 살이 되면 정을 끊고 독립시켜야 한단다. 부부가 가장 잘 보여줘야 할 것은, 서로 부부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하고 희생하고 양보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란다.
그런데 행복한 부부생활은 버리고 그 시간과 정성을,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쏟는 게 아니라, 애에게 쏟으니 문제가 시작됐다. 이런 양육의 근본원리를 모르니 어디서부터 잘못 된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꽃밭에 물 주듯이 지극한 정성으로 키우지만 부부간 쏟지 못한 모자란 만족감과 불평을, 부부싸움이라는 천둥 태풍으로 날려 보이니 꽃은 상처 받고 비뚤어진단다. 이 흠집이 어린 밑동에 남아 평생을 간다. 그러나 눈치를 못 채고 있다가 사춘기 이후 인과응보를 받는단다. 밑동의 암세포가 세포 변이를 일으켜 모든 자극과 반응에 부정적 영향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란다. 자식도 부모도 모르게 말이다.
애들이 보고 배울 건 부부싸움 뿐이었다. 스승은 없고 무뢰배만 보았다. 처음에는 애들 보는 데서는 안 싸웠지만 점점 감정이 격해지자 이판사판 돌아보지 않게 됐다. 부부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춘기 이후 애들이 말썽을 부리고 제 맘대로 갈팡질팡 분노하는데 브레이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이런 여자와도 산 것은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마저 기대가 무너질 때 그는 절망이라는 단어와 만나야 했다. 그 기대는 수만 번 반복되고 한 발 물러서고 또 기대하기를 반복하다 건강에 적신호가 와 활동력을 잃을 때 내려놔지기 시작했다. 자식에 대한 결론이 난다는 것은 아내와 이혼 시기 결정의 첫째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젠 남편 아내 자식이라는 싸움을 고만하고 싶었다. 총을 버리고 총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찌 가족이 전쟁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된 세상인가. 싸움터를 버리면 싸움도 버려진다. 그는 결정했다. 아내를 두고 같이 혼자 밥을 먹는 것과 없어서 혼자 먹는 것은 다르다고. 그는 홀로 되어 홀로 밥을 먹는 것이 차라리 정당하며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
그 마음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부모님 산소였다. 그는 산소에 담배를 물려드리고 술잔을 돌려 올렸다. 그리고 오래 속마음의 말을 보고 드렸다. 두 분은 알겠노라고 하는 것 같았다.어머님은 추가 당부가 있으신 것 같았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 묫등의 잡초들을 오래 뽑은 뒤에 내려왔다.
아내는 벌써 반 달째 계속 되는 남편의 하루 한 끼 저녁식사 대접에 뭔가 가슴 한편이 답답해오고 있었다. 처음엔 이벤트라고 헛웃음으로 넘겼지만 변함없이 꼬박꼬박 남편의 봉사가 계속 될수록 마음이 변해 갔다. 처음엔 "웃기지 마라!" 반발이었다. 그러다 "이젠 좀 잘하기로 마음을 고쳤나?" 의구심이 시작되더니 "그런가봐!" 에서 "그러네!" 이해로 넘어갔다. 그 다음엔 "하긴 착한 남자였지!" 긍정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잘 한 것도 없어!" 반성으로 넘어갔다. 그러던 게 어제는 " 쑥스럽게 자꾸 이러니 내가 미안 하네!"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너무 이기주의적으로 바라기만 하고 모질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마음을 좀 받아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이 차려준 밥상을 다 먹은 후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여보 당신한테 나도 잘 한 게 없는 것 같아. 마음 풀고 이제부턴 내가 밥도 해줄 테니까 그만 해"
"식사 다 하셨습니까."
"또 그 존댓말, 뭐야 하지 마, 이젠! ......밥은 잘 먹었어"
아내의 말이 끝나자 그는 열어 두었던 거실 창문을 닫고 와 앉았다. 존댓말이 아니라 전처럼 반말이었다.
"어, 밥상 올리는 것 오늘이 끝이야. 혼밥도 못 먹는 귀신도 있어. 당신이 우리 어머님 제사상 지난16년 동안 안 차렸거든. 오늘까지 열여섯 번째 제사상이었어. 맛있었어? 산소의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헤어지기 전에 니가 나한테 해줄 밥 난줄 알고 당신한테 해 먹여 보내라고.
내일 법원 판결문 올 거야. 이젠 당신 입 가고 싶은 데로 가"
<한국미니픽션작가회10집 "혼자,괜찮아?" 2018.1.28 문학과 문학사 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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