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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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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09:23:26, 조회 : 664, 추천 : 48 |
제목 지하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었다니. 함께 숨 쉬고 이 시대를 견뎌왔었다니. 다들 어찌 어찌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과 신비감으로 찾아온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 있고, 오늘 밤 누울 곳이 있고 어디론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한 사람도 벌거벗은 자가 없고 한사람도 신발을 신지 않은 자가 없고, 목걸이 시계 안경을 걸치고 깨끗한 얼굴로 전철을 타고 누구랄 것도 없이 핸드폰을 누르며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오묘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 이것은 파도일까, 물거품일까.
전철 안. 잡담, 신문 보는 사람과 로뎅의 군상들이 엉킨 공간에 수백 개의 운명이 얼킥 설켜 꿈틀거리고 있다. 이렇게 산다는 일이 이어지는데, 열차는 컴컴한 지하로 끝없이 달리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자신을 절감하며 모두는 자꾸 자신감이 떨어져갈 때 ,남들이 살아가는 일이 위대해져 보이기만 한다.
“ 글쎄 말이야, 요즈음 젊은 것들은 예절을 몰라. ”
경노석 앞에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는 다른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분홍 스웨타 위로 깜장 바탕에 금빛 무늬가 고급스런 스카프를 목에 두른 할머니였다. 조금 아까 정류장에서 탄 두 할머니 중 한 좌석만 비어 한 할머니만 앉았었다. 앉아 있는 할머니도 어디 나들이라도 하고 오는 듯 밝고 화사한 차림새였다. 두 할머니 모두 살짝 화장한 얼굴인데, 젊었을 때 곱다는 말을 들었을 듯 아직도 고운 티가 남아 있어 살아온 지난날이 유복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흔한 관절염도 없는 듯 건강하고 활달해 보였다.
“전에 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젊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애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며 양보를 않더라니까. 원래 경노석은 노인들이 앉아 가라고 있는 거 아니야?
“ 그래?, 고얀 것이네.”
그러면서 서 있는 할머니의 눈이 앉아있는 할머니의 옆 할아버지에서 그 옆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세 명이 앉게 돼있는 경노석 마지막 좌석엔 젊은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데 푸석한 머리카락에 얼굴은 핼쓱해 보였고 그 앞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전철은 이미 두세 정거장째 서고 출발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우리 딸과 함께 어딜 가면 우리 딸은 얼마나 양보를 잘하는지, 노인네만 보면 일어나서 앉으시라고 끌어다 권한다니까."
“ 아, 그 간호원 한다는 딸, 그렇게 생겼더라. 싹수 없는 것들하고는 질이 달라.”
할머니의 눈이 왔다 갔다 수없이 움직이며 앉아 있는 할머니와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까보다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 끝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일어나자 할아버지에게 그쪽으로 옮겨달라고 하여 할머니끼리 나란히 앉았다.
“ 끝까지 앉아 있다 내리네. 진작에 일어날 것이지 그렇게 눈총을 줬으면 알아들어야지 젊은 것이 못들은 척한다니까."
“ 그러게 말야.”
두 할머니는 앉았다는 안도감에 희색이 만면해져 둘이 연신 깔깔킥킥 즐거워하고 있었다.
“ 여기 앉으시우”
그때 옆에 앉았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한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 아니예요, 괜찮아요. 할아버지 앉으세요.”
아주머니는 일어났던 정거장에서 내리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소녀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부축을 하였고, 아주머니는 다리를 끌며 간신히 일어나 기둥쇠를 붙잡고 서 있었다. 그 상태로 전철이 서고 또 서도 몇 정거장째 계속 가고 있었다. 치마 밑에 오른쪽 신발은 왼쪽과 달리 두꺼운 신발창이 덧붙은 채 짧고 가는 다리 끝에 매달려 덜렁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아주머니의 오른발에 시선이 몰린 두 할머니의 얼굴빛이 전철 창 밖의 어둠처럼 변해갔다.
< 선녀와회사원. (도)나무와 숲.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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