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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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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30 19:50:25, 조회 : 73, 추천 : 0 |
<미니픽션> 2017.7. 1.
지하철의 발견
구준회
전두엽: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었다니
함께 숨쉬고 이 시대를 견뎌왔었다니
다들 어찌 어찌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과 신비감으로 찾아든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 있고, 오늘 밤 누울 곳이 있고
어디론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한 사람도 벌거벗은 자가 없고
한사람도 신발을 신지 않은 자가 없고
목걸이 시계 안경을 쓰고
깨끗한 얼굴로 전철을 타고
누구랄 것도 없이 핸드폰을 누르고,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
침묵, 잡담, 신문, 로뎅의 군상들이 엉킨 공간에
수 만개의 운명이 얼기설켜 꿈틀거리고
이렇게 신기하고 신비롭게 산다는 일은 이어지는데
열차는 컴컴한 지하를 끝없이 달리는데,
한없이 가벼워지는 나는
자꾸 자신감이 떨어져가고
살아가는 일이 위대해져 보이기만 하는데.
후두엽:
방학마다 컴퓨터로 새로운 뭔가를 모색해본다고 컴퓨터방에 처박혔었지.
올 여름은 철저히 컴퓨터를 만나지 않고 바깥으로만 돌았던 것 같다.
사진 찍는다고, 맡기고 찾는다고 ,또 산을 가야 한다고
애들과 동해를 두 순배나 하고
고향 산소와 외갓집, 지방 있는 친우 두 명도 만나 숙제 거의 한 것 같고,
거의 해와 비와 땀으로 범벅된 한 여름이었다.
실컨 돌아다녀 남은 게 그으른 피부. 속이 시원하다.
두정엽:
또 살아봐야지 가을이 오잖나.
드러버도 살아봐야지 아직은 숨이 쉬어지잖나.
꺽꺽 살아봐야지 내가 결론짓지 않아도
조물주가 할 일 명운이라는 실을 챙기고 있으니까.
숨골:
죽음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지는 날까지 있어보는 것 아니겠나.
처자식 때문 일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겠나.
한갓 커피 맛이 좋아서
좋은 사진 한 컷을 찍어보기 위해서
그냥 바람의 향이 좋아서
길을 가다 예쁜 여자 꼬마가 발견돼서
전철 앞자리 벙어리 부부의 소리 없는 수화의 대화를 한없이 바라보게 돼서
농약을 뿌리면 튀어오르는 벌레를 먹기 위해 수많은 잠자리가 따라다니는 것이 보기 좋아서
몇 해 더 못 사실 것 같은 어머니의 형제를 만나러 다니는 게 행복해서
친구들이 아직은 살아있기에 더 만날 수 있어서.
해미:
몇 해 전부터 버리기, 비우기. 놓아버리기가 되고 조금씩 더 되네
악착떨기가 사라지고 있어.
세상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고
안 되도 그러려니 해지네.
좋은 현상일까 나쁜 징조일까.
조그만 집으로 이사 가려니 너무 가진 게 많아
작은 산소 하나, 그곳으로 가려면 더 하겠지.
살고 죽는 것도 내 걱정할 몫이 아닌 것 같으이.
깨어 일어나 아침을 맞고 일터로 가 할 일을 하고
사람을 스치고 저녁을 맞는 일. 다 귀한 일이데.
측두엽:
전철을 타러가며 밀려드는 사람들이
파도로 보이기도 하고
물거품으로 보이기도 하데
허걱이며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그래 내 인생은 물거품 같은 거가 되고 말았어.
지금은 차라리 편해
무엇이 될 수 없으니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니 모두 고마워
뇌교:
낼 토요일은 동생 둘을 태우고
큰 외삼촌, 작은 외삼촌, 셋째 외삼촌댁을 갈까
그 다음날은 고향 조상님들 벌초 모임에 함께 해야지
잘 깎아드리고 오겠네.
각막:
그런데 으잉, 이 사람들 뭐하는 거야?
눈동자를 들어 사람을 찍는다. 빼곡하다.
머리를 찾는다. 시믹의 모래알이다.
뇌로 들어가 본다. 대양이다.
세포 뉴런을 본다. 우주다.
빅뱅과 수억만 별, 폭발, 종말. 어휴, 골이 아프다 지하철 한 칸.
우주를 가동해 놓고 핸드폰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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