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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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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21:18:23, 조회 : 52, 추천 : 1 |
<마지막 화분>
구준회
쨍그랑! 화분이 깨졌다. 엄마는 깜짝 놀라 뛰어 나왔다.
" 아이구 이런, 어쩌다 깨뜨렸어요? 다치진 않았어요?"
아빠는 엄마의 질문에 대답없이 화장실타일 위에 쏟아진 흙덩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흙더미 사이 사이 하얀 사금파리조각이 예리한 단면을 드러내고 번뜩였다. 마치 깨진 화분이 자신을 깨트린 무언가에 살의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죽은 화초의 뿌리만이 앙상한 뿌리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으나 침묵이 그 위를 쏜살같이 휘돌고 있었다. 엄마는 조용히 쓰레받기와 빗을 들고와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엄마는 오래 울었다.
이 연립주택 지하실로 이사 온 것이 문제였다. 결혼해서 지난 이십 년 동안 아파트 생활만 한 엄마는 연립주택을 몰랐다. 그것도 강남에서만 살아 본 사람이 갑자기 아빠의 퇴직 후 강북 산밑의 연립 지하실로 이사를 하는 날 엄마는 한참이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망연자실했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어지럽게 쌓인 살림을 이곳 저곳에 쑤셔박으며 정리를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끝날 줄을 몰랐다. 아파트에 맞춰진 살림살이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이리 저리 옮겨보고 다시 옮겨두기를 되풀이했다. 마음도 처박힐 곳을 몰라 헤매고 있는 듯 했었다.
그중 가장 난감해 한 것이 화분이었다. 베란다에 두던 화분이었다. 이사 올 때 이십 여개가 되던 화분을 둘 공간이 없었다. 지하실엔 베란다라는 게 없었다. 바깥 지하 계단 밑이나 좁은 거실 이곳 저곳, 혹은 다른 짐과 바꿔 놓기를 날마다 반복하곤 했다. 그리고 해가 들지 않아 햇빛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햇볕도 없었다. 빛과 볕을 잃은 화분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된 것이다.
삶을 끌고 지하로 내려선다는 것, 지하는 아늑할 줄 알았는데 문명에서 쫒겨난 수많은 벌레들이 소란스런 냄새를 종일 피우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가 필요해 소리질러보지만 거미줄과 거미가 포식할 어둠의 벌레와 한 식구 된 줄을 깨닫는 게 빨랐다. 그런 새로운 식구들과 사귐을 시작할 때 지하 최대의 적이라는 장마비가 덮치는 줄도 몰랐다
방범창을 뜯고야 이사짐이 내려딛은 이곳은 지상에선 전혀 몰랐던 구겨지고 질척한 공간이라서 땅속에서 곡괭이질 해보지 않은 엄마로선 눈물이리라. 들어서자마자 탈출이 꿈이 돼버려 아빠는 ' 삶이려거든 지하에는 오지마라'고 무심히 써지는 낙서를 붙잡고 짐 속에 짐으로 끼어있었다.
할 수 없이 책같은 짐은 풀지 않고 박스 상태로 방 귀튕이와 계단 밑, 문 옆 벽에 쌓아 놓았다. 햇빛을 볼 조금 넓은 지상층 집으로 옮겨갈 때까지 개봉을 미뤄놓기로 했다. 물론 습기로 분명히 썩을 거라는 이사꾼 아저씨들의 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하로 이사 오면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없다는 마음도 많아졌다. 생존 땜에 할 수 없이 할 수 없는 자포자기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펐다.
문제는 무생물은 쌓아놓으면 된다지만 화분의 나무와 꽃은 무생물이 아니었다. 숨쉬고 먹고 동화작용을 하고 꽃 피며 자라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지하엔 동화작용을 할 햇빛이 없다. 치명적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아닌게 아니라 예상대로 화분이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죽은 건 20년 전 결혼하고 기념으로 장만한 행운목이었다. 그 나무는 신혼 때 엄마 아빠의 알콩달콩한 장면을 한 집안에서 가지 하나 잎새하나마다 지켜보며 녹음된 추억의 나무였다. 살림엔 서툴렀어도 엄마의 화초사랑은 남달라 집안의 화분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랐다. 20년을 동거한 화분이 죽은 것이다. 엄마는 그날 굉장히 쓸쓸해 했다.
두번째 죽은 것은 난화분이었다. 그 난은 시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 주변에 피어난 난초를 함께 성묘 갔던 난에 밝은 외삼촌이 채취해 옮겨준 화분이었다. 엄마는 그 난 잎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물을 주며 마치 외할머니 보듯 아끼는 것 같았다. 난향은 깊고 은은했다 마치 외할머니 기억처럼 체취처럼. 그 난 화분이 죽은 것이다.엄마는 외할머니를 두 번 잃은 것처럼 상심했다.
죽은 화분의 나무나 화초는 대부분 하얗게 뿌리가 썩어 있었다. 잎이 마르고 가늘어지거나 누렇게 변색 되어 가다가 힘없이 떨어지거나 처졌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화장실로 옮겨 물을 주곤했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그 흔한 햇빛을 볼 수 없는 것이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 여름 장마가 오래 지속된 지하엔 폐렴이 번졌다. 어둠 속에 산다는 것이 인간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나와 아빠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엄마는 집에서 오래 약을 먹고 버텨야 했다. 군에 간 오빠만이 아무 일이 없었다. 그렇게 병마가 휩쓰고 간 뒤 화분의 숫자가 확 줄었다. 인간도 버틸 수 없는 곳에서 화분의 생명력도 더 버틸 수 없었나보다.
퇴원하는 날 아빠는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이 말했다.
" 아빠는 콩팥기능이 40%정도만 남았어요"
아빠는 방에서 며칠을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외출을 하고 온 아빠가 말했다.
" 우리 집을 내놨다. 좁아도 꽃과 나무는 햇볕 있는 지상에서 살아야 한다. 마지막 화분은 살리자"
내가 물었다.
" 화분은 다 죽었잖아요. 어떤 화분요?
아빠는 내 눈을 찬찬히 보며 말했다.
"우리집의 제일 크고 오래 살아야 하는 마지막 꽃화분."
"어디요 어떤.?
"니 엄마. "
한숨처럼 말이 이어졌다.
"삶의 마지막이 지하실이어서는 안돼지 않겠니?
<홀로와더불어 219 봄호 2019.3.. 구상선생기념사업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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