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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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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09:24:10, 조회 : 694, 추천 : 57 |
제목 어머니의 비
“어 웬 비가 와“
쨍쨍한 하늘, 술잔을 부어 올리고 절을 한 뒤 산소 위에 난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는데 동행한 육촌이 한마디 한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 한 조각이 언제 왔는지 빗낱을 몇 방울 뿌린다.
“또 오네”
그랬다.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뵈올 적마다 거의 틀림없이 비가 왔다. 그리고 산소를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딴청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산소를 가는 날은 언제나 맑고 쾌청한 날을 정해가는 것이 상식이고 나 또한 그리하건만 어머니의 산소에서만은 꼭 비를 맞게 된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예외 없이 그랬다.
이십 일 세기 달나라를 욍복하는 세상에 이일은 내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어머니와 비, 반갑다는 어머니의 인사일까. 섭섭하다는 눈물일까. 궁금함은 해를 더해갈수록 깊어진다. 빗방울이 더욱 커진다.
십여 년 전 장지에 모시던 날도 비가 왔었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삼오제 날은 하늘이 뚫어진 듯 퍼부었다. 그리고 이후 내가 산소에 들를 때마다 가랑비라도 내렸었다. 늘 산소에서는 내 몸이 젖어야 했다. 무슨 뜻일까, 무엇을 말씀 하시려는 걸까. 산 아래를 바라보고 비를 맞으며 앉아 있으려니 건너편 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말이 없는데
하늘엔 비
풀꽃 흔들림 서녘으로 기울고
빗방울마다 커지는 어머니로
젖어가는 사람
"아들아
바람결에도 생각 했단다
어두워지면 혼자 산 지키고
성덕사 동종소리 따라 네 집에도 갔드랬다."
머언 곳 뻐꾸기 소리 젖는 산골에
수의를 입고
땅속으로 내려딛는 사람
어머니, 어머니, 비되신 어머니
어머니의 일생은 어이 그리 불쌍하셨던지. 어이 그리도 복이 없으셨던지. 이생의 고생이란 고생은 한 치도 비켜보지 못하고 골고루 다 겪고 사셔야 했었다. 생존 하나 지키기도 어려웠던 삶. 그곳에 행복을 논할, 삶의 보람을 논할 틈이 없었다. 하늘도 늘 추웠고, 땅도 늘 얼었었고, 바람도 모질기만 했던 그 시절 그 일생을 눈물 없이 사시다 가셨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꾸 우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산소만 찾으면 오는 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색 슬픔, 한 인생의 눈물이 하염없이 온 하늘에 차 떨궈지고 있는 것, 훠이훠이 물 되어 흐르는 한이 장남에게 얘기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일까
빗방울에 풀벌레들만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무덤에 누워, 흙 속에 갇혀 비를 맞으면 어떨까. 눈으로 스미는 비, 눈은 감겨드렸지. 코로 스미는 비, 솜으로 막아 드렸지. 내가 빨고 자란 젖가슴, 날 안아주던 따뜻했던 손, 따뜻했던 등, 진흙물이 파고드는 차디찬 땅 속.
생각하기 싫어 머리를 젓는다. 그래서 비가 오는 것이 더욱 싫었다.
“오빠 산소에 올 때마다 비가 왔었다고 말했었잖아?“
“어, 그랬지”
“오늘은 안왔네. 셋 다 오니 그런가보다.”
"응? 어, 그랬네.“
그랬다. 그렇게 늘 오던 비가 이번엔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쳐준 건 바로 여동생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휘잉 돌며 경이로운 사건의 발견이라도 한 듯 정리를 해보려고 머리 속의 필림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결혼 이후 처음으로 우리 삼남매만 여행을 하기로 한 건 아버님 제사 때였다. 외삼촌이 고향에 새로 예쁜 집을 지었다기에 안부 전화를 드리니, 시집 간지 한번도 보지 못한 여동생이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마음에 박혀있었다, 마침 며칠 후가 노는 토요일이어서 일요일까지 연휴로 이어지니 한번 과감히 삼남매만 외삼촌댁도 들르고 고향 산소도 들러 벌초도 해보자는 얘기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외삼촌댁에서는 떡을 해놓고 우리 삼남매를 기다리고 있었고, 옛날 얘기에 밤이 이슥하도록 잠들지 못했었다.
“ 니 어머니 느이 삼남매 기르느라고 고생이 많았지. 어느 손가락이 깨물어 안아프셨겠니. 이렇게 아들 딸 잘 낳고 사시는 것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셨겠니.” 어머니 얘기를 하실 때 외삼촌은 음성이 낮아졌었다.
다음날 고향의 시골을 찾아들어 고향 친지들께 인사를 올린 후 어머니의 산소를 찾은 건 점심이 지나서였다. 여름내 욱 자란 주변 아카시아와 잡초를 베어내고 가지고 간 낫과 톱을 씻고 나니 햇발이 서산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리고 서울을 향해 들 때쯤엔 밤이 깊은 후였다. 서울이 거의 다와 가는데 난데없이 여동생이 어머니의 비 얘기를 한 것이다.
내가 혼자 갔을 때와 이번에 갔을 때의 차이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가지 삼남매가 함께 갔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고속도로가 고개를 넘어서자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네온사인덩어리 서울이 새삼스럽게 꽃밭처럼 휘황찬란하게 눈에 들어왔다. 운전 중이라서 두 동생들을 순간적으로 돌아보았다. 어머니로 보였다.
외삼촌의 어젯밤 한마디가 울렸다
“ 어느 손가락이 깨물면 안아프셨겠니.”
2014 한뼘자전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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