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준회
|
2007-09-19 09:25:21, 조회 : 750, 추천 : 52 |
제목 망부석(忘夫石)
망부석(忘夫石)
아침밥을 안 먹겠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출장 떠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고 있었으니까.
파도 흔들릴 때마다 한잔 하고 싶을 때나 한잔하고 있을 때마다 파도가 흔들리나 캄캄하긴 마찬가지다. 출장지 공무를 마치고 바닷가를 걸을 때 팽팽하게 밀려오는 적의와 밀려가는 적의의 근거를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것은 언어의 적의, 그 언어들의 가엾음으로 인간에 대한 실망이 뼈아프게 깊어지는 세월이었다. 서슬이 퍼런 언어를 표창처럼 던지고 상처가 아픔을 지워갈 동안 묵언으로 지낼 수 있는 게 편했다.
그건 서로 마찬가지였다. 부부는 한 몸이다. 부부는 살 한 토막이다. 한 쪽이 열에 달궈지면 어쩔 수없이 전도 되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식으면 식어질수록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바다 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차r갑고 아프다. 이곳에서 부딪치는 것은 하얘진다. 파도가 그랬고 머리 속이 그랬다.
- 사이가 나빠지는 첫째 원인은 비난이죠.
- 당신은 왜 도대체 항상 한 번도 내 말을 결코 절대 안 듣나?
- 두 번째는 방어죠.
- 그러는 넌 뭐가 잘났다고 옆집 남자들은 ---
- 세 번째는 경멸
- 재수 없게, 복에 겨워서 주둥이만 놀리고 있네.
- 네 번째 담쌓기
- .......
- 말 안하기, 늦게 들어오기, 가출 , 별거--
종착역을 향한 여정을 그려 본다. 촛불처럼 흔들리는 나날.
- 혹시 내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외계인이 어느 날 침투하여 내가 할애 받은 인생의 시간을 갈취해 그놈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 부호 같은 파도의 포말은 바닷가를 잽싸게 돌아다니며 섬광처럼 끝없이 설의법 문장을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
아내와 둘만 있다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연애시절 그랬지 않았는가. 무슨 큰 논리가 필요할 일도 , 분석해 해결할 문제도 없었지 않았는가. 결혼, 수요가 있으니까 하는 인류의 작업.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난 다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엠에프 이후 모든 걸 다 뺏기고 인생의 살아볼 맛까지 다 뺏어갈 즈음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결혼이란 유리구슬을 자식이라는 본드가 엉거주춤 붙여 유지라는 버팀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충분히 비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언제 마지막 남은 신경의 뿌리를 칼질해 끊어내느냐 만 남은 것 같았다.
그는 취기가 오를수록 갈지자로 휘청거리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럴수록 앞으로 내달리는 의식은 물살같이 알콜의 회전문 안에 갇혀 팽팽 돈다.
왜 강남이란 곳에 오면 마술이 걸리는 걸까. 괜찮던 남편이 같잖아 보일까. 평범한 자식이 영재나 특수한 자질의 소유자로 변해 큰일을 저질러 줄 걸로 인식될까. 왜 본인은 숨은 진주였는데 그것이 묻혀 있다가 이곳에 오니 발견됐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될까. 만나고 어울리고 밥 같이 먹은 사람들과 본인은 원래부터 같은 성골이었고 드디어 알아주는 무리를 만났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무엇이든 똑같이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그런 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걸까.
강남의 공기가 그런 걸까. 짙은 매연의 독소가 환각제 역할을 하는 냥 강남에 오면 왜 가라앉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위로 위로 뜨기만 하는 걸까. 남의 최상과 본인의 최하가 동급이며 구차한 성실성보다 쾌적한 부도덕이 기본윤리가 되는 걸까. 내 가정의 가난한 행복보다 옆 가정의 화려한 외면을 동경하게 되는 걸까. 그 모든 것은 남편의 무능의 소치라는 저주로 뼈아프게 각인될까.
미국에서 자식 교육 차 몇 년 살다보면 돌아오지 않는, 그러다 이혼까지 하고 남자만 돌아오는 이유는 한번 미국 맛을 본 여자들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기러기 아빠 친구의 푸념도 스쳤다. 강남의 증세는 그 중간 쯤 되는가. 논리적 합리성을 지니도록 생각을 바꾸는 일이 이렇게 편리하게 쉽게 우습게 같잖게 이루어지는 그곳은 마법의 성이다. 이사를 가자. 시골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천천히 눌렀다. 성형외과 친구는 졸린 듯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봐 왜 안 된다는 거야. 집사람 눈을 턱 부분에 이식시켜 내려달라는 수술도 못하면서 네가 성형외과 의사 자격이 있냐? 어려우면 코 밑으로라도 이동 시켜다오. 그것도 안 돼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