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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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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09:26:00, 조회 : 688, 추천 : 44 |
제목 망부석 (望婦石)
망부석 (望婦石)
그녀에게 남편의 아픔이 전해진 것은 남편의 처음 가출 때는 아니었다. 둘째 주까지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도리어 남편이 집에 없다는 것이 자유로웠다. 현대 백화점 커피숍에서 계모임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 프랑스 현대 화가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살펴보고, 비싸기로 유명한 일식집 우동을 홀짝인 후 강남스파 찜질방에서 뜨끈히 허리를 지질 때까지도 괜찮았다. 3주째까지는 다른 아줌마들이 남편 회사로 전화를 걸어 저녁을 사달라며 약속을 하고 뿔뿔이 흩어져도 괜찮았다. 아니 이번 기회에 이혼한 친구들과 못해 본 5박6일짜리 중국 계림 관광 여행까지 가을 벌판에 메뚜기 뛰듯 다녀왔다.
이곳 강남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남편과는 평온한 편이었다. 그런데 2,3년이 지나자 남편의 참견이 시작돼 들이받고, 침묵이 시작돼 핀잔주고, 바깥생활이 분주해져 좀 덜 살핀 게 다였다. 요즘 세상 그 정도는 당연히 남편이 이해해야하는 게 아닌가.
강남이란 곳에 입성하게 된 것은 몇 십대 일의 경쟁으로 딸애가 국립 초등학교 입학추첨에 당첨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립 초등학교보다 더 좋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그 초등학교에 아침 점심으로 통학을 시켜주던 그녀는 6개월 만에 손들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애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로 이사 온 것이 이곳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1년이 가고 2,3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강남댁이 돼가는 정코스를 밟아갔다. 애가 학급 임원이 되자 학교를 들락이게 된 그녀는 자연스럽게 어머니회 임원이 됐고, 학부모들과 어우러지다 말 맞는 몇몇이 계모임으로 발전했으며, 월례모임은 수시 번개모임으로 발전해 갔다. 처음엔 좀 얼떨떨하던 그녀는 유연한 현실적응력으로 이 모임의 핵심 멤버가 되어갔고 촌티 나던 대화술이 환타스틱해졌으며, 가을 단풍 같던 입성도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해져 갔다.
그리고 날로 바빠져 갔다. 박물관 견학, 문화 센타 강좌, 불우 어린이 돕기 모임, 환경공해 캠패인 등 모임장소에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교장, 구청장, 교수, 국회의원으로 발전되며, 집안에 들어박혔을 때는 생각지 못한 인물들로 확대되어갔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애 엄마에서 구청장으로, 국회의원쯤으로 생각의 수위도 수직상승해갔다. 정말 불우아동을 위해,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여성을 위해, 북핵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국민을 위해 무엇인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커갔다. 하잘 것 없는 구청직원도 못되는 사기업 셀러리맨 남편은 도대체 이런 이슈에서 100미터 바깥을 스치는 파리만도 못해 보였다.
그런데 4주째 들어서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그달 치 월급이 늘 들어오던 통장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정도 부부싸움은 늘 하던 터였으며 외박을 며칠 정도하는 것은 다반사요 회복도 여반장이었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는 느낌이 오싹 들었다. 회사를 관뒀다는 얘기 아닌가. 그래서 수소문에 나서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을 발견한 곳은 1년여가 지나가던 어느 날 서울역이었다. 구청 주최 노숙자 위로의 날 행사로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식사를 나누어주고 있던 그녀의 시야에 먼저 먹겠다고 다투는 두 사람 뒤로, 멀리 구석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수염이 까칠한 한 사내가 보였다. 초점 없는 눈빛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체념한 냥 평온해 보이는 그 남자에게 주먹밥을 가지고 다가가던 그녀는 소스라치며 황급히 도망쳐 귀가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그녀는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녀는 서울역을 찾아갔고 한 남자와 오랜 시간 대화를 한 후 쓰러질 듯 홀로 돌아오고 있었다. 초점 잃은 그 남자의 눈동자에는 그러나 이런 글이 비석문처럼 써 있었다.
남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쓰러질듯 일해도
현대 남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깨보면 굶고 출근했고, 퇴근해 라면을 혼자 끓여 먹어도
요즘 애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침은 굶기거나 우유 한잔에 콘푸러스트 찌끄려 주고
저녁은 마트에 시켜 펼쳐놓았다 거두기만 하는 인스턴트식탁
부부싸움하면 그나마 며칠씩 멈춰도
남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당뇨로 생명이 소멸돼 가도, 자다 고통에 병원을 혼자 가도
지 건강은 지가 지켜야 한다고
현대 가정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발길 끊긴 집이 돼도
사랑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 때든 안방을 나가도
그래요 남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수천만 원 정도는 몰래 부도당해도 괜찮은
안 배웠기에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고
가르치겠다면 무조건 자존심 솟아 화만 내면 되는
왜 그러냐면 더한 여자도 있다고 하면 되는
남편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말없이 자꾸 아버지 산소나 갔다 오고.
어머니 보고 싶다, 어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남편
아!
남편이란 그래도 되는 존재인줄 알았습니다.
<문학서울 통권11호.서울교원문학회 간 (도) 좋은문학 200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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